슬구 2022. 4. 3. 10:10

일터에 적응하고 이삿짐 정리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놀러댕겼다. 왜냐면 난 중국에 놀러왔으니까😊

날씨가 좋은 날이 드물어서, 해가 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안 나가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강박적으로 돌아댕긴 것도 있지만 나에게는 4주 격리 동안 갇혀있었던 슬픔과 회포를 푸는 것이기도 했다. 

 

1. 우시의 벚꽃 명소, 위엔토우즈 공원(鼋头渚)


따뜻한 남방 지역이라 그런지 3월 초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봄비가 와서 벚꽃이 다 졌을까봐 부랴부랴 주말 아침에 서둘러 위엔토우즈로 향했다.

중국은 관광지에 등급을 매기는데 무려 이곳은 5A 관광지다. 봄철이면 벚꽃 보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다는데,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줄도 금방 서고, 한산한 풍경이었다.

사실 전날까지 동네 어딜가든 링시 어플을 스캔해서 보여달라고 난리였어서, 아예 입장을 안 시켜줄까봐 걱정을 했었다. 

입장 거부 당하면 근처에 태호나 구경하면서 산책해야지 싶었는데, 역시 유명 관광지는 달랐다.

입구에서 줄을 서서 건강마(쑤캉마)와 행정마(씽청마)만 보여주니 금세 통과됐다. 게다가 말 못하는 외국인이 쉽게 티켓을 뽑을 수 있는 무인기계 창구도 따로 있었다.

감동의 티켓 발권의 현장

우리는 공원 내부에서 순환하는 차를 탈 수도 있고, 더 안쪽 섬으로 들어가는 배 탑승 왕복권도 포함된 티켓을 구입했다. 종이 QR이나 문자로 전송된 QR 이미지를 보여주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공원이 아주 크기 때문에, 태호와 벚꽃길을 둘러보며 걷는 것도 좋지만 나올 땐 차를 타는 걸 추천한다. 빠르고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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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라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하는 느낌으로 걸었다. 호수와 연못 주변에 수양 버들이 예쁘게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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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太湖)는 중국에서 3번째로 큰 호수다. 너무 커서 한 번에 보기 쉽지 않으며, 태호를 다 보려면 쑤저우 지역까지 넘어가야 한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널 땐 광활한 풍경에 호수가 아니라 바다에 놓인 느낌마저 들었다. 바다도 아닌데 배에 갈매기 떼가 모여드는 장면도 독특했다.

날씨가 흐려서 호수 너머 풍경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날씨 좋은날 자전거 타며 호수 풍경을 즐겨도 좋겠다.

작은 호수 주변에 핀 벚나무들과 수변 정자도 멋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아예 벚꽃만 화려하게 펼쳐진 길이 나온다.

만개한 꽃들도 있고 초록잎이 벌써 나기 시작한 것도 있었는데, 한 주만 지났으면 거의 다 졌겠구나 싶었다. 

하겐다즈 녹차아이스크림, 비쌌지만 먹을만했다.

중국에서 벚꽃을 보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많은 벚꽃이 심겨져 있다니 놀라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과의 수교를 위해 지은 벚꽃길이라고 한다. 어쩐지 풍경이 많이 일본스러웠다. 소원같은 것을 써서 붙이는 장식도 나무에 많이 매달려 있었다.

한참 걷다가 허기가 져서 작은 가게에 들어가 샤오롱바오와 훈툰을 먹었다. 관광지 치고 나쁘지 않은 가격과 맛이었다.

연못에 꽃잎이 떠다니는 모습도 예쁘고, 코스프레 하듯이 전통식 복장을 갖춰입고 예쁜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배를 타고 안쪽 섬으로 들어가니 더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원 같은 것도 있고,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공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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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 들어오니 사람도 훨씬 덜 붐비고, 아기자기한 섬의 풍경도 좋았다. 가족들이랑 같이 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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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쯤이 되니 사람들이 떼지어 올라오는 모습을 봤다. 공원 규모에 비해서 사람은 한적한 편이었지만, 벚꽃 시즌이나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인파를 조심해야할 것 같다.

한참을 걸어 다니느라 배고프고 피곤해서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나왔는데,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놀러 가고 싶다.

 

2. 야경이 아름다운 난창지에(南长街)

저녁에 산책이나 할까 하고 나섰던 길인데, 뜻하지 않은 관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잘 놀았다.

'난창지에(南长街)'는 강 주변에 오래된 골목과 관광지 느낌으로 조성된 거리가 유명한 곳이다. 택시를 타고 갔는데 생각보다 가까워서 놀랐다.

택시를 타니 바로 난창지에 거리 팻말 앞에서 내려줬다.

화려한 입구에 들어서면 스타벅스가 위엄있게 서 있고, 여러 차 브랜드들이 줄지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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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에 HEY TEA(喜茶)에서 토란 밀크티를 사먹었는데, 토란이 잔뜩 들어가서 맛있었다. 캐릭터도 귀여워서 반했다.

깔끔하게 조성된 거리와 여러 상점들에 눈길이 갔다. 현대식으로 멋지게 지어진 가게들도 많고 오래된 고풍스런 건물들을 개조해 식당이나 카페로 만든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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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둘러보긴 했지만 딱히 살 건 없었다. 조용한 거리를 걷다가 골목 틈새로 들어갔더니 예쁜 풍경이 짠 하고 나타났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울글불긋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과 돌다리 너머 강이 흐르는 풍경이 참 예뻤다.

한 바퀴 산책하고 나니까 허기가 져서 대왕 오징어 꼬치를 하나 사 먹었다. 매콤짭짤하고 맛있었다. 둘이서 나눠먹었는데 양이 많아 꽤 배불렀다.

다시 입구로 나와서 하겐다즈 건물이 보이는 쪽으로 다시 방향을 틀어서 들어갔다.

해가 조금씩 지니 등과 간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건물이 많았던 첫 골목과 달리 두번째로 들어간 곳은 오래된 인사동 골목 느낌이 흠씬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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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링시 어플 안 된다고 막아서, 수기장부를 쓰겠다고 했더니 쓸 펜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경비원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주변 가게 사람들에게 펜을 구해오더니 별 자질구레한 신상정보를 다 쓰라고 했다. 

원래 이쪽 길과 큰 입구 쪽 길은 연결되어 있어서 처음 입장할 때 신분 확인을 한 번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연결 입구를 못 찾는 바람에 우리는 두 번이나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했다.

관광지에 갈 땐 항상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한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발목을 잡힐까 걱정하면서ㅠ_ㅠ

그래도 다행히 쉽게 통과해주긴 했다. 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이쪽 거리에 신기하고 예쁜 가게들이 더 많았는데, 밤이 되고 인적이 드물어 져서 그런지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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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풍경을 즐기며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테라스가 있는 예쁜 카페에서 차나 커피를 마셔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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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야경뷰가 멋진 다리에 도착했다. 강물 끝으로 우시의 중심가 도시뷰도 잘 보인다.

생각보다 거리가 넓고 길어서 오늘 다 보려면 너무 늦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중간 연결다리를 기점으로 반대쪽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걸어가다가 기념품 샵에 들렀는데, 농농 마스킹테이프, 포토카드, 나인 퍼센트 종이 스티커를 발견했다. 포토카드랑 스티커만 샀는데 마음이 어찌나 뿌듯하던지. 역시 예쁜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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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농이 너무 귀여워

해가 저물고 다시 배가 고파져서 근처 가장 사람들이 붐볐던 촨촨샹 가게에 들어갔다.

宽巷子成都串串香(南长街店)

촨촨샹은 '꼬치훠궈'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 먹어 봤을 땐 재료를 접시에 담아 와서 끓는 냄비에 투하시키는 형태라서, 거의 훠궈랑 같은 방식으로 먹었었다.

여기서는 QR 메뉴판을 스캔해서 재료를 담으면 뜨거운 국물이 담긴 냄비에 꼬치를 담가서 준다.

냄비라서 식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보온성이 뛰어난 냄비라서 그런지 다 먹을 때까지 식지 않았다.

처음에 냄비에 들어갈 맛을 고르고 꼬치를 선택해야하는데 어떻게 고르는 줄 몰라서 대충 시켰더니 꼬치가 아주 적게 나왔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왕창 꼬치를 더 주문했다.

고기, 야채 양껏 시켜 주문해도 가격이 비싸지 않다. 그리고 정말 자극적이고 맛있는 마라맛이다.

언젠가 훠궈집에서 먹어본 적 있었던 홍탕츠바가 있길래 시켜보았다. 인절미? 꿀찹쌀떡? 느낌인데, 조청같은 달달한 소스에 찍어먹으면 맛있다. 

맛있는 요리에 또 술이 빠질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이 다 하얼빈 맥주를 마시길래 따라 시켰는데 역시 최고. 꼬치의 마라한 맛과도 잘 어울린다. 

이건 궁금해서 시켜본 판다 맥주. 망고 맛이 달달하게 난다. 촨촨샹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맛만 보고 다시 하얼빈 맥주로 갈아탔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놀 생각은 아니었는데, 놀다 보니 저녁 늦은 시간이 됐다.

입구에 또 화려한 조명을 나무를 장식해논 걸 보고, '참 중국스럽군'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될 수록 더 예쁜 곳이라서 다음에도 저녁 때쯤 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