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중국에 와도 엄마의 잔소리는 여전하다.
일 하는 중에 전화가 와서 급한 연락인가 하고 받으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짜고짜 잔소리가 시작되고,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가 끊긴다.
격리 때 한창 우울했을 때 엄마가 전화로 위로를 해준 적도 있지만. 내가 가장 행복하고 기쁠 때 그 행복의 맥을 끊는 것도 엄마다.
엄마의 잔소리 종합선물세트는 대략 이런 부류로 나뉜다.
1. "나가서 놀아라"
나가서 놀면 코로나 시국에 나돌아 다닌다고 또 잔소리함. 이건 한국에서 맨날 반복되는 패턴이어서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다.
2. "돈 쓰지 마라" "돈 모아라"
애초에 나는 큰 돈을 벌 수 없는 직업이고, 생활을 하는 데 돈을 쓰지 않을 수도 없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씀씀이가 헤픈 편도 아니다.
나는 중국에 외화벌이 하러 온 게 아니라 돈 벌어서 그거 다 노는 데 쓰러 왔다. 그 돈을 얼마나 쓰든 어따 쓰든 엄마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엄마는 '전세금을 돌려받은 것으로 이자율이 높은 적금을 들라'는 말을 하면서 내 전세 보증금이 얼마였는지 대출금이 얼마였는지를 물었는데, 내가 바보같이 솔직하게 대답을 하자 "벌어 논 돈이 그거밖에 안 되냐"는 말을 했다.
딥빡의 순간. 화가 많이 났다.
5년 동안 개처럼 벌어서 전셋집을 내 힘으로 마련한 것만 해도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취업 이후 처음 월세 집을 마련할 때 보증금을 빌려주긴 했지만, 그 돈도 내가 벌어서 갚았고, 학자금 대출빚도 내가 다 벌어서 갚았다. 그 이후로 집에 손을 벌린 적도 없다.
시간이 차츰 지나자 엄마는 넌지시 용돈을 바랐고, 난 그럴 여력이 없었다.(그건 지금도 그렇다) 상여금이 나와도 제사비만 보태어 주는 정도가 내 최선이었다.
그마저도 안 하는 내 동생(나보다 잘 버는데도)을 보면서 엄마가 내 재정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늘어놓는 것이 심히 불쾌했다.
돈 한 푼 아끼려고 버둥대며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지겹다. 나는 내 돈 펑펑쓰면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3. "좋은 사람 만나라"
내가 이 얘기를 듣는 것을 많이 싫어한다는 걸 엄마도 안다. 이제는 눈치 보면서 뉘앙스만 바꿔가며 말한다.
애인이 있었을 때도 나는 엄마에게 그의 존재를 결코 알리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간섭할 게 뻔하니까.
애인이 없는 지금도 틈만 나면 있지도 않은 상대와의 결혼과 있지도 않은 손자 생각을 하며 미래 계획을 펼치고 계시니 더 무어라 말하겠는가.
제발 엄마나 좋은 사람 만나 행복했음 좋겠다. 진심이다.
4. "많이 먹지 말고 운동해라"
오늘 뭐 했냐고 물어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게 놀았다'고 하면 어김 없이 '많이 먹지 마'라는 잔소리가 날아든다.(이미 많이 먹었는데?)
엄마는 내가 진정 좋은 거 보고 좋은 거 먹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는 게 맞는지. 어쩌면 제 딸을 스트레스로 구워 삶고 싶으신 것인지. 맨날천날 내 자존감을 깎아 내리지 못해 안달인 사람처럼 군다.
한국에서는 내 상태가 건강하지 못 해서 엄마의 잔소리를 더 피해다녔다. 엄마의 직격타에 종종 마음을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다.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와 꽂히지 않는다.(물론 화는 난다.)
아이들에게 '천성'이라는 말뜻에 대해 설명하다가 나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게을러서 너는 글렀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하니 경악하며 질린 표정을 보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매일 내 직업에 충실하고 덕질도 열심히 하는 내가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나는 너무 열심히 살다가 병까지 날 지경이어도 엄마는 늘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 기준이 잘못된 거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영원히 엄마가 바라는 딸이 될 수없다.
중학교 때부터 그랬다. 엄마는 계속 채찍질하면 내가 변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내가 욕심 많고,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하고 자기 것을 누구보다 잘 챙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 그리고 남들에게 내보일 만큼 자랑스러운 존재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 욕망을 나도 모르는 게 아니다. 애써봤지만 안 되는 걸 뭐.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어쩌면 나는 평생 엄마가 바라는 딸은 되지 않을 예정이었다.
엄마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아마 죽을 때까지 나는 고집스럽게 반항할테고,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에 오기 전 엄마가 '내가 뭘 잘못 했길래 자식들이 계속 날 떠나느냐' 한탄을 한 적이 있다.
이건 누가 누구에게 잘못해서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함께 있으면 괴로우니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니까. 서로를 위한 최선의 거리 두기 해결책이다.
중국에 와서 나는 조금 행복해졌다. 마음이 편하다.
당분간은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을 예정이다. 이 행복을 더 오래 즐기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