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에도 볕이 드나요?
분명 격리해제일엔 여름 날씨였는데, 일주일 내내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추운 겨울이 됐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계속되니 기분도 축축하고 피곤함이 자주 찾아왔다.
우시는 비가 자주 오고 흐리고 습한 편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교통이 마비되며 이런 때 배달을 시키면 2시간 이상 지연되는 경우도 일쑤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주말에 아침식사 배달을 시켰다가 오후 늦게서야 끼니를 해결했다. 비오는 날 택배 짐을 찾으러 나갔다가 쫄딱 젖은 상태로 무거운 짐을 날랐더니 병이 날 뻔 했다.
택시를 못 잡아서 2시간을 걸으신 분도 있고,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다가 결국 예정된 시간에 핵산 검사를 받지 못한 분도 있었다.(물론 다음 날 예약을 잡고 다시 가면 되는 일이지만, 길바닥에 버린 시간과 돈은 어쩌란 말인가.)
이제 막 이 도시에 적응하는 샘들의 갖은 실패담을 전해 들을 때마다 남일 같지 않아서 웃픈 심정이다.
여느 때와 같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아침 통근 버스를 기다리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오신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게 됐다.
운동화를 버리고 장화를 사야 해.
우시에서는 배수 시설도 좋지 못해서 비가 오는 날 어딜 잠깐 나가기만 해도 신발이 다 젖는다. 운동화가 아무리 많아도 충분히 마르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니 장화가 필수템인 것이다.
작은 일도 헤매고, 요령 없이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게 이런 사소한 조언과 꿀팁들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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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날씨도 날씨지만 코로나 방역 정책도 매일 변화무쌍하다.
격리 해제한지 12일이 지나서 나에게도 행정마가 생겼다. 그동안 행정마가 없어서 큰 쇼핑몰이나 광장에는 들어갈 수 없었는데,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된 것이다.(사실 그 동안은 다른 사람 걸 몰래 도용하며 다녔다.)
자유의 기쁨도 잠시 '灵锡'(우시 지역 주민의 건강마, 행정마 등을 체크하는 어플)라는 어플 속에 인증해야 하는 QR코드가 또 하나 생겼다.
외국인 신분으로는 인증할 수가 없어서 어제는 집 앞 편의점도 못 가고 아파트도 못 들어갈 뻔 했다.
사정사정해서 들어가긴 했다. 그런데 왜 내가 우리 집에 못 들어가고 한참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된 걸까. 생각할수록 화나는 일이다.
하루 지나고 나니 외국인의 인증 문제가 일단락 된 것인지 이제 아무도 어플을 설치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건물 입구마다 붙여져 있는 QR 코드만 봐도 진저리가 처질 정도 였으니ㅠㅠ 무사히 하루를 버틴 셈이다.
오늘 잠깐 외출하고서 집에 돌아오니 현관 문 앞에 또 QR 코드가 붙어져있다. 환장하겠다.
이번엔 아파트에서 관리하는 어플을 또 만들었나 보다. 시벌
뭐 자꾸 QR이며 어플이며 만들거면 외국인도 다 되게 하는 걸 만들던가. 꼭 들어가보면 중국인 신분증 번호 쓰라고 해서 결국에는 못 쓰는 어플만 계속 늘고 있다.
이젠 그냥 '팅부동'만 외치는 외국인으로서 살아야겠다.
뭔가를 설명하려고 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는 건 중국에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언어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도 나에게 요구나 지시를할 땐 번역기를 아주 잘 쓴다.)
개개인의 삶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나라라서(한국의 경우에는 비할 바가 못됨) 함부로 거슬렀다가 패배하는 일이 계속 되니 사람이 위축되고 무기력해진다.
한국에서도 장애인의 이동권이 이슈인데, 여기에서도 사람들이 함부로 밖에 나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주 기를 쓰고 어플들을 만들어 놓는다.
이동에 대한 자유는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다. 집에 못 가고 회사에 못 가고 밥을 못 먹고 화장실에 못 간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해결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적으로도 자유롭지 못 하게 된다.
누군가는 어플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나라라서 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어플이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나라다. 이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거나 누가 나서서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어플 문제로 밥도 못 먹고 물건도 못 사고 집에도 못 들어갈 뻔 했지만, 결국엔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찌저찌 해결해냈다. 그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외출이 한층 더 두려워 진 것도 사실이다.
바뀌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의 친절만 기대할 순 없으니까.
따뜻한 볕이 그리운 요즘이다. 청명절 연휴엔 뭘하면 좋을까. 즐거운 생각만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