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쓰기/중국 격리일기

격리 끝 중국 생활의 시작

슬구 2022. 3. 20. 11:56

격리해제 D-Day

드디어 바깥에 나갈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 너무 기뻤다.

우시는 많이 더운 날씨였다. 가끔 폭풍같은 바람이 몰아 닥치기도 하고, 비가 올 것같은 습습한 기운을 품긴 했지만, 벚꽃과 매화들이 길 거리에 피기 시작한 걸 보면 이곳은 봄이 한국보다 한 달 정도 빨리 찾아오는 것 같았다. 

입국할 때 가져온 패딩을 열심히 싸서 가방에 넣고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중국 휴대폰을 개통하러 갔다.

중국 번호가 생기면 배달도 받을 수 있고, 인증 절차가 번거로운 QR 코드(건강마 등)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휴대폰을 개통해도 격리가 막 끝난 외국인 신분으로는 안 되는 것이 무지하게 많다.) 

나는 중국어를 못해서 행정실 직원분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집의 인터넷 설치까지 신청하고, 이삿짐도 순조롭게 옮겼다.

격리 해제된 다음부터는 총 6번의 핵산 검사를 받아야하는데, 그걸 알려주는 곳이 아파트 동사무소(社区)다. 

이곳 지리도 잘 모르는 내가 동사무소를 찾아가 혼자서 그 일을 처리하기는 어려워서 이번에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분은 중국어밖에 할 줄 몰라 의사소통이 힘겹긴 했지만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해결은 했다.

할 일을 마치고서 부동산 중개인이 후련한 표정으로 떠나갈 땐 이제 진짜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중국 휴대폰 개통하러 갔다가 만난 차이쉬쿤

 

격리자의 서러움은 끝이 없다

격리 해제날 나는 당연히 출근을 못했고, 그 날은 학생들의 첫 등교일이었다.

교육국의 등교 지침이 전날 저녁에 바뀌는 바람에 일부 학생들이 등교를 못하게 되었다. 

긴급하게 이 학생들만 원격수업으로 참여하기로 했는데, 인터넷 문제로 이 아이들만 학급회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투표를 하지 못한 아이들은 선거 과정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나는 상황 파악이 덜 된 채로 중간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좋을지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다음 날 학교에 출근해서 담당 선생님께 문의하니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재선거를 하면 된단다. 

작은 일도 큰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이 일로 하루 동안 너무 많은 감정을 소모했는데, 소외된 학생들에 대한 걱정과 담임으로서의 조바심, 어차피 상황을 몰라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다는 무력감 때문에 꽤나 지친 하루를 보냈다.

서러움에 울컥 눈물이 날 뻔 했지만 그 날 저녁 언니를 만나 회포를 풀었더니 금세 나아졌다. 

출소하고 나서 사먹은 밀크티. 아아 이거슨 자유의 맛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

격리해제 다음 날은 비자 신청용 신체 검사를 받으러 갔다. 오후에는 비자 신청 후 학교로 돌아오는 일정이라서 아침에 미리 출근해서 교무실 분들께 인사를 했다. 

예상보다 빨리 학교에 출근한 나를 보고 몇 분은 내가 오늘부터 출근일인 줄 잘못 알고 계신 분도 있었다. 작은 학교지만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구나. 

내 자리는 비워져 있었고, 노트북을 포함한 아무런 물건도 상비되어 있지 않았다. 오후 보강이 취소되어서 수업에 바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노트북도 책도 없다니.

하는 수 없이 노트북을 빌려서 수업을 진행했다. 1시간 수업 동안 진땀을 뺐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해주어서 고마웠다.

행정실에서 노트북을 받아 챙겨오니 인터넷 접속과 TV 연결에 계속 문제가 생겼다. 다운로드한 업무용 메신저 파일도 설치만 3시간이 걸렸다.

오늘 중으로 프린터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는데 사람이 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해보니 전달을 깜빡 잊어버리셨다고 한다. 

나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골머리를 썩히기만 했는데, 퇴근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바삐 퇴근하기 시작했고,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하고서 나도 퇴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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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받은 노트북으로는 여전히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급하게 해야하는 업무까지 있어서 혼란만 가중됐다.

출근하면 새롭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조금 답답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계속 될 때마다 '아 한국이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솟구쳤지만. 그런 생각을 해서 뭐하나. 여긴 중국인데. 마음을 다 잡으며 인내심을 키워보기로 한다.

출근한 지 3일 째가 되어서야 컴퓨터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평소처럼 수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원격수업 도구를 줌(Zoom)이 아닌 텐센트(Tencent)로 변경한단다😂

정신 없는 와중에 텐센트 설치를 마치고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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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는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졌다. 출근 전 핵산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 꽤 험난했는데, 도착하고 나니 명단에 내 이름이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춥고 비내리는 아침에 개고생을 하고서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일했다. 아무도 나의 초췌한 꼬라지엔 관심이 없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아이들도 아파서 조퇴를 많이 했다. 여름이 금세 찾아 올 것 같았던 우시의 날씨는 다시 겨울로 돌아갔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까

중국도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금요일엔 갑작스럽게 전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핵산 검사를 실시했다.

호텔 격리를 하는 동안에도 수도 없이 받은 검사지만 이렇게 단체로 검사를 받는 건 또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했다. 

언제 우시가 봉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이 동시에 들었다. 

퇴근 후에는 드디어 보일러를 고쳤다. 집에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서 여러 번 수리 요청을 했는데, 늦게서야 사람을 보내준 것이다.

집에 온기가 도니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았다. 금요일 저녁에는 함께 격리를 했던 샘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회포를 풀었고, 주말에는 근처에 있는 쇼핑몰도 구경하러 다니며 진정 자유인이 된 기분을 새롭게 느꼈다. 

격리 해제 이후 숱한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그래도 이리 빨리 적응하게 된 것은 다 사람들 덕분이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며 환영해주는 언니와 아이들, 뜻없이 갑자기 받았던 드립백과 초코케이크, 서러움과 좌절을 딛고 열심히 적응중인 샘들의 피땀어린 조언들까지.

아직 낯선 환경이지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조금씩 중국 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

더 자유롭게 중국을 누비며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상하이 여행의 추억의 맛 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