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을 앞두고
출국 D-10
출국이 10일 남은 시점에 부산에서 고양으로 이동했다. 이제 남은 짐 정리를 착착 하며 마음을 다스리기만 하면 된다.
출국 7일 전 PCR검사(1회), 2일 전 PCR검사(2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는 '코로나 안 걸리기'가 됐다. 오미크론 확진자가 나날이 급증하다보니 그것도 맘처럼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대학 동기 결혼식과 발령 동기샘들과의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약속을 취소할까 백 번 정도 망설였던 것 같다.
약속은 취소하지 않았다. 지금 못 보면 분명 2년 동안 다시 못 볼 사람들이니까. 피차 서운할 일을 만들지 말자. 설사 코로나에 걸려도 아무도 탓하지 말자. 굳게 마음을 먹고 나니 후회는 없었다.
약속 당일에 녹초가 됐지만 사람 만나는 일정이 끝났다는 것만큼은 기뻤다. 이제 맘 졸이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 출근일엔 정신이 없었다. 되도 않는 연수 모니터링단에 지원하는 바람에(거의 반강제로 떠밀려 하게 됐지만) 실시간 줌 연수에 참여하면서 업무 인수인계도 하고, 이삿짐도 싸야했으니 말이다.
일을 마무리 짓고 나서는 구내염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 이런 상황에서 입병이 나는 건 당연하다. 다행히도 약을 먹으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짐 싸는 것만 해도 정말 큰 일이었는데, 한틈도 쉬지 않고 바쁘게 일했던 게 조금 억울했다.
언니 말대로 출국 전이 가장 힘든 거라고 했으니 조금만 버티자.
출국 D-2
이제 출국도 이틀이 남았다.
분명 어제 연수가 끝났는데, 오늘도 접속해야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으로 기상했다. 대저택에서 친구들을 불러 놓고, 구석 구석에 놓인 쓰레기를 치우는 꿈을 꿨다.
전셋집을 비우느라 노이로제에 걸려서인가 보다.
집에는 수거해갈 짐(매트리스, 책상, 서랍장)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집이 비어갈수록 겨우 1년 동안이었지만 채운 것이 참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안한 고양 라이프를 버리고 떠나는 길엔 후회는 없지만 출국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겪기 직전까지는 몰랐다.
'힘들 땐 돈으로 해결해'라는 언니의 말을 신조처럼 새기며 물건을 버리거나 옮기는 데 돈을 펑펑 썼다.
짐을 다 싸고 나니 일단은 후련했다. 마음의 짐도 함께 덜어낸 기분이었다.
혼자였다면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다 해결하지 못 했을텐데, 도와준 쀼에게 정말 감사하다.(어쩐지 이삿짐 싸기는 나보다 쀼가 더 주도적이고 열성적이었다)
마지막 음성 결과가 나오자마자 너무 기뻐서 화랄라 머리를 잘랐다.
새로 개업한 미용실에 가서 급하게 잘랐는데 친구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이라고 놀렸다. 나도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 이 촌스러운 머리를 어떻게 하면 좋나.
격리하면 야한 생각을 마구 열심히 해야지:)
출국 D-Day
예민함의 끝을 달렸던 출국 당일.
저녁 8시 반 비행기라서 오전엔 널널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게 다 무책임하고 멍청한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 때문이다.
주말에 오기로 한 인터넷 수거 기사님은 연락이 오지 않았고(미리 해지 신청을 해두고, 방문예약 날짜를 잡았는데도), 겨우 연결된 상담센터는 '빈집에는 기사님을 보낼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하는 수 없이 오전에 집에 다녀왔다.
전세금 반환 날짜에 대해 다시 물으니 집주인은 부동산에 연락하라고 어물거렸고, 부동산도 애매한 답변을 줬다.
그리고 관리비, 수도, 전기, 가스비 정산을 해달라고 했다. 원래 임차인이 이사일 기준으로 정산하는 게 맞긴 하지만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급하게 처리할 건 또 뭔가.
이미 집을 나온 상태라 일 처리를 하기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지 않는 고객센터에 겨우 전화를 걸어 몇 가지를 해결했다.
설상가상으로 비도 오고, 점심 약속도 3시로 딜레이 되었다.
분명 내가 먹고 싶었던 연어 뱃살이었지만 (물론 맛있어서 9만원치 먹었다) 공항까지 가는 일정도 빠듯하여 마음이 분주했다.
공항 버스를 놓칠세라 택시를 잡아탔고, 공항마중을 하러 와준 친구들과 무사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겨우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계획대로 풀리지 않은 일들이 정말 비처럼 쏟아지는 하루였다. 진짜 혼자였음 여기까지 못 버텼을거다.
항공수속 대기줄이 길어서 기다리는 동안 가족과 통화하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눴다.
우리 가족 중엔 아무도 내 출국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바다 건너 제주도 가는 사람마냥 짧게 작별인사를 했다. 아부지가 전화로 사랑한다고 할 땐 눈물이 핑돌았지만 꾹 참았다.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도 물론 실감이 안났다.
우리가 4년 전에 함께 상하이로 여행을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나 혼자 상하이로 출국하다니. 그 땐 상하이에 왜 가는지도 몰랐어. 그냥 따라간 여행이었지. 지금은 누구보다 상하이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지만;
한국을 떠나면 한국이 더 그립겠지. 지난 2년 간 내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다 가족과 친구들 덕분인데 그들과 떨어져 2년 동안 지낼 생각을 하니 먹먹하고 두려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2년 동안 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더 즐거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