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소연을 들어줘
꿈에 개상이가 나왔다. 별로 좋지 못한 징조라 여겨졌다.
얼마나 내가 하소연을 하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동생욕을 아직까지도 입에 달고 살 정도로(개놈자식, 개상똥) 나는 그놈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가득하지만, 욕 할만큼의 애정이 남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동생이 일본으로 떠난 뒤로부터는 싸운 적도 거의 없고. 최근 개상이는 내 욕받이만 주로 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꿈의 징조를 받아들여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의 통화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들끓는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으며, 또 엄마의 이중적인 태도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신랄하게 떠들어댔다.
혼잣말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도 덜 외롭고 속 시원했다.
중국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로부터는 장기 외국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면접에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도통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주변에서 하는 걱정어린 말들은 불안과 동요를 멈추기 보다는 증폭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내 간절한 부추김으로 같은 곳을 지원했던 친구도 만약 혼자 붙으면 어쩌나 불안해 하니 친구에게 미안함도 점점 커졌다.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말이 필요한 상황에서 문득 개상이가 이런 말을 해줬다.
누나는 여전히 나한테 대단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뭐든 괜찮아.
가족으로부터, 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순간에도 확신이 들지 않아 망설이고 방황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는데. 그걸 눈치 채주고 따뜻한 말을 해주다니 뭉클하고 고마웠다.
이제 더 이상 고민하며 위축되지 말자. 내가 선택한 일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 그런 용기가 샘솟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