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맞아 불효한 이야기
아직 빡침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로 쓴다.
된통 정신없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30분 정도 늦게 일어나서 학원 가기 전 아침 약속에 지각할까봐 서둘러야했기 때문이다.
옷장 서랍을 여는 도중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소리를 꽥 질러댔다. 대충 어버이날에 효도 안 하고 뭐하냐는 식의 그런 말이었다.
나는 손가락이 옷장에 낀 상태에서 황급히 빼는 바람에 피부의 일부가 쓸렸다. 피가 뚝뚝 흐르는 와중에도 엄마의 잔소리는 계속됐다.
당황했고, 마음은 바빴고, 도통 엄마의 말에 진지하게 상대할 겨를이 없었다.
"엄마, 이런 말은 나한테 하지 말고, 개상이(아들놈)한테나 해."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대충 상처를 수습한 채로 집밖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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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도중 가족 카톡방에 온갖 사진들이 올라왔다.
엄마는 남의 자식들이 남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진을 계속 올려댔다. 내가 보낸 꽃 사진은 달랑 빼고.
엄마의 유치한 복수극이 시작된 셈이다. 전화를 걸어 된통 욕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니까.
하루 종일 아무 반응이 없자, 엄마가 갑자기 미안하단 톡을 보냈다.
하나도 안 미안하다는 것 쯤은 눈치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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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저녁 2차전이 시작됐다.
동생과 통화 이후 한풀 꺾인 탓인지, 엄마는 곰살맞은 태도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섭섭함을 다시 토로했다.
친구들이 하도 자랑을 하는 통에 배아파서 그랬다고. 그렇다고 자식들한테 나쁘게 굴 건 없었는데 그 부분은 반성한다고. 또 다른 친구가 현금을 주며 위로해줘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렸다고.
어찌된 영문인지는 대충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화가 났다.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구나. 또 다른 섭섭함과 분함이 차오르기도 했다.
2주 전 엄마 생신 때도 선물을 뭐 살지 한참을 골랐는데, 다 싫고 돈 달라고 하는 바람에 떨떠름한 기분으로 용돈을 보내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꽃 선물을 받고 싶다고해서 어버이날에 꽃을 보내니 '꽃은 무슨 꽃이냐'라고 역정내는 통에 기분이 완전히 상했다.
친구 덕분에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이제와서' 꽃 선물 고맙다는 말을 하다니.
이처럼 단순하고, 변화무쌍한 당신의 태도가 너무 무례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원하는 거 다 해줬고, 해줄 수 있는데, 다시는 나에게 이런 식으로 화풀이 하지마."
나는 엄마의 애교에 휘말리지 않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서로 피차 기분 나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까 할 수 있는 말만 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아픈 손가락을 보며 엄마를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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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란 뭘까. 유교걸 K장녀의 오래된 고민이다.
나는 그저 부모가 내 인생의 빚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로 따수운 빛이 되어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온종일 바쁘게 살다가 때마다 빚쟁이 된 기분으로 떠밀려 사는 것도 매우 지친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나의 불안과 공포까지 자식과 나누고 싶진 않다.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우리끼리라도 잘 지내자'라는 단단한 신뢰가 필요하다.
엄마도 어쩌다 내 엄마가 되어서 고달프게 살지만, 우린 더 이상 서로를 괴롭힐 필요가 없다.
곧 아부지의 환갑이 다가온다. 나는 또 이 영원한 숙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